제한된 시간동안 물리적 육체-용기에 담겨있는 의식.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잠시 육체속에 머무는 ‘육체의 유통기한’ 동안 자기 의식의 양과 깊이를 얼마나 확장하는가..의 운명적 숙제를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의식의 양과 깊이를 확장한다는 것은, 육체라는 경계선 너머로 의식이 확장하여, 육체를 원래의 영혼 의식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의식이 여러 물질차원계를 다운스텝하며 나타나고 있는 영혼 물질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잠시 육체로 존재하며 육체 경험을 하다가, 다시 자신의 원형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누구나 운명적 숙제를 안고 태어나는 인간임을 알때에,

결국 두가지 유형의 인간, 두가지 인간의 삶이 있는 것 같다.

 

육체에 담겨있는 동안, Inner work(내면의 작업)을 하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가 그것이다.

내면의 작업(Inner Work)이란 거창하게 들리지만, 육체 물질을 본래의 영혼의식으로 변형해 내는 과정이다. 거창한 말과 달리, 과정은 대단히 일상적으로 부단히 진행된다.

단적으로 말해, 내 의식의 “집중”이 어디에 꽂혀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로 보면 된다.

매일, 매순간, 나는 어디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가..

매일 생각하고, 매일 집중하고, 또는 매일 흘려보내고, 매일 싸우고 있는 그것의 에너지는 

우리의 DNA 형판을 활성화하거나 잠재된 것을 일으키거나 더욱 왜곡시키거나 하는

대단히 “물리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영적/정신적 집중이 어떻게 육체의 물리적 작업으로 나타나는가..

의식과 육체 사이에 흐르는 전류의 흐름, 정묘한 에너지 몸들이 분명히 있다.

깨어있는 의식은, 어떤 생각이 특정 호르몬을 제조하고, 어떤 집중이 몸 안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면의 현실을 갈수록 내적인 집중으로 느끼고 감각할 수 있다.

Inner work은 의식의 집중이 몸 안에서 일으키는 여러 원자적 작용, DNA 적 작용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게 한다. 인간의 정신, 사고, 마음이 몸 안에서, 몸 밖으로 일으키는 미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인과작용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것이 Inner Work의 결과이기도 하다.

 

의식의 집중이 몸 안에서 일으키는 여러 작용들을 통해 우리는 영성과 과학이, 생물학이 어떻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온전하게 Wholly하며 신성한 Holy 현상인가를 알 수 있다. 이건 존재의 직관이고 타고난 생리적 앎인데, 이 직관에 깊어질수록, 이 지구문명에서 과학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가를 치를 떨면서 깨닫게 된다. 영성과 육체를 분리시키고, 의식의 당연한 존재원리를 육체의 물질과학과 철저히 분리시켜온 거대한 기만과 사기..그 사기의 덫에 압도적 대중이 완전히 잠든채 빠져있다.

 

Inner Work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의식이 육체의 주인이라는 엄연한 현실에 깨어난다.

의식과 육체 사이에 본래 경계는 없는 것이다.

오랜 인간 DNA의 퇴행으로 죽음이 발생했고 죽음은 의식과 육체 사이에 일시적인 경계를 만들어놓았다. 물론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다. Inner work을 하는 사람들은 죽음의 경험에 대해 다른 차원에서 깨어나 그 현상을 보게 되며, 죽음이라는 물리적 경계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혹은 현대의 사악한 과학이 주장하듯, 존재의 사멸도, 소멸도 아닌 것임을 안다. 이 얼마나 의식에 대한 참람한 신성모독!인가!

 

Inner Work을 하지 않으면 이들 과학계가 구사하는 현란한 엘리트적 사기, 기만에 의식이 끌려다니는 외부 감옥의 철장에 살게 된다. Inner Work을 하지 않으면 종교계가 구사하는 능구렁이 지옥불 염불에 의식이 끌려다니는 마음의 감옥에 살게 된다. 현대에서 과학과 종교가 인간에게 하는 작업들은, 결국, 의식을 육체용기에 가두어 놓고, 육체 안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질식시키는 일이다.

 

스스로 육체의 주인임을 알아서 “의식의 집중”을 통해 몸의 전류와 흐름을 바꾸고 DNA 가닥들을 조립하거나 왜곡을 치유하는 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임을 넘어, 원래 인간은 그런 의식의 파워를 가진 존재들임에 우리는 속히 깨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런 파워를 인식하고 깨닫기 위해선, Inner WORK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철저히 개인의 책임이며 개인의 숙제이다.

이 세상에 만약 ‘진정한’ 스승이 있다면 인간에게 해줄 말은 딱 한마디 일 것이다.

“니 일이여. 니가 해야 혀..”

 

티칭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여러 케이스를 개인적으로 경험하면서 크게 느낀 것은

INNER work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Path가 결국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다.

이 티칭은 개인 스스로 해야 하는 셀프 작업에 절대적으로! 기반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기 의식의 집중과 흐름을 자기의 몸과 연결해 다리를 구축하고, 그 다리의 전류 도관으로

주파수를 끊임없이 흐르게 함으로 영혼의 의식주파수를 육체의 물질로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기 몸과 마음, 생각으로 해야 하는 작업들을 안일한 방식으로 직무유기한다면, 티칭의 정보주파수는 머릿속에만 머물뿐, 몸 안으로 내려와 퍼지지 못한다. 내 살과 피로 환원되지 않은 주파수는 나의 것이 아니다.

이건 엄연한 물리이고 법칙이다. 몸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릿속에 있는 건, 금새 잡새들이 와서 물어가기 마련이다.

 

육체의 경계가 흐려지고 의식과 몸, 마음이 하나로 Holistic 하게 Holy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게 되면 마음으로, 의식의 집중으로, 어떤 상태를 바꾸어 간다는 현현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의식의 파워는 육체의 경계너머, 경계를 허물고 변형시켜서 몸 안에서 자유의 물질, 자유의 원자를 일깨워 내는 것에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지식적으로 알고 마음으로 납득하고 몸으로 수용할때, 진리의 실재 주파수가 몸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 활동을 감지할수록, 우린 의식적으로 이 활동을 더욱 강하게 흐르게 하는 주파수 조절과 확장, 증폭과 도약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디스토피아 세상이 뿜어내는 두려움과 불안의 저진동 주파수 대역에서

데이야티 플레인의 살아있는 신-의식의 고진동 물질로 스스로를 변형하고 구출해 가는

진정한 Metamorphosis..의 과정.

인간의 메타적 영적 의식은 아멘티 구체를 통해 이미 설정(setting-creation)되어 있다.

아멘티 구체의 Meta적 Creation Frame 안에서 우리 개개인은 각자의 생물학적 DNA를 지휘하는 진화적 책임(choice-evolution)-Morphosis의 과제를 안고 있다. 아멘티구체는 창조와 진화 Creation- Evolution 가 동일선상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영성과 과학의 인위적 의도적 분리를 하나의 온전함으로, 태초와 현재, 미래를 이어 완결시키는 “완전한 인간이해의 보고” 이다.

 

Inner Work은 그래서 내면의 INNER-STAND를 일으킨다.

의식의 육체 감금이..그 지옥의 환영이 날로 심화되는 디스토피아 세상에 머물면서..

유토피아의 전류로 Inner-Stand.

 

나는 영원한 은총의 고요한 힘(Silent Strength of Eternal Grace)를 지금 여기 이곳에서 나타낸다.

 

Bright Flower Garden의 빛과 향..충만함과 신성함으로 몸의 세포와 원자들을 적시며

그 신성한 Plane이 내 의식의 현실로 접혀 들어오고 있음을 느끼는 나날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