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명에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템플렛(Template)”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간단한 사이트를 구축할 때 원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해줄 템플렛을 골라 사용한다. 템플렛(형판)이란 “특정 모양을 가진 판, 틀”을 말한다. 무엇을 만들겠다는 의도, 목적을 정하고 그를 표현할 기본 구성요소들과 디자인을 만든다. 이런 요소들을 코딩, 알고리듬으로 정해 프로그래밍한다. 즉, 템플렛은 의도를 구현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진 정해진 틀, 뼈대, 근간, 청사진이다.
앞서 얘기한 것을 다시 상기해보자.
“의식”은 우주의 핵심 물질이다. 의식은 에너지이고 에너지에는 의식이 있다. 의식은 우연히, 무작위로, 무질서하게, 의미와 목적없이 시간과 창조계로 진입하지 않는다. 의식-에너지로 이루어진 우주구조에는 신근원의 “의도”, 즉 창조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근원의 핵심 의도가 있다. 이 핵심 의도를 구현할 기본 구성요소들과 디자인을 만들고, 이런 요소들을 코딩, 알고리듬으로 정해 프로그래밍한다. 신근원이 창조계를 창조하는 재료는 “의식-에너지”이다. 신근원은 모든 창조의 시작과 과정, 진행을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무한의 지성이다. 무한지성은 의식으로, 의식을 통해, 의식에 의해 운영되는 근원적인 틀, 뼈대, 구조를 정하고, 이 구조들이 운영되는 질서, 법칙을 의식과 에너지의 “설계도” 형판으로 만들었다. 즉 신근원의 무한 지성은 의식의 물리적 에너지 역학을 “템플렛”(형판)으로 나타낸다.
의식은 에너지를 배열하고 관장하는 고도로 질서화된 기하학적인 패턴 구조로 나타난다. 신성기하학이라 일컫는 것은, 의식이 스스로를 조직화해 질서로 나타난 에너지 형상들이다. 물질-에너지에는 영적인 의식이 들어있다. 영적인 의식은 에너지 법칙의 템플렛을 통해 움직이고 흐르고 활동한다. 의식과 에너지, 영성과 물리법칙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신근원의 창조 “템플렛”은 의식과 에너지의 활동, 구조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정보이다. 무엇보다, 신근원의 창조의 의도, 본래의 설계, 본래의 의식성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신근원은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근원의 의도는 자신의 마음(근원 의식장, 지성장) 안에서 모든 경험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신근원은 자신의 의도를 템플렛으로 만들었다.
근원의 마음 안에서 경험되는 모든 현실의 경험은 근원이 마음으로 꾸는 꿈, 홀로그램이다.
신근원은 이렇게.. 홀로그램 “템플렛” 우주를 창조했다.
신근원의 거대한 의식장, 지성장 안에는 창조계의 수많은 홀로그램 템플렛(형판, 설계도, 청사진)들이 의식, 에너지의 우주 질서, 법칙을 따라 영속적으로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 우주는 수많은 대우주와 소우주의 템플렛들이 빛, 소리, 진동, 입자들로 수놓는 템플렛의 거대한 인드라망이다. 영원하고 영속적인 의식에너지의 흐름(플로우)들은 근원의 의도를 핵심으로 반영하는 수학적 기하학적 문양을 형성하며, 서로 정렬되고 회전하고 맞물려 집합을 이루는 상상을 초월하는 만화경의 홀로그램 템플렛들이다. 경험창조계의 홀로그램 우주는 신근원의 창조의 의도(Intention)가 빛과 소리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 현현 템플렛”들이다.
템플렛은 의식이 경험창조계의 수많은 차원 현실계를 경험하게 하는 질서, 구조, 시스템 들이 정교하게 상호작용하며 역동하게 하는 역학적 틀이다. 신근원 의식은 템플렛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조직화하면서 형판에서 형판으로 “이어지고” “상호작용”하면서 각 차원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물질들로 나타난다. 창조의 형판, 청사진들을 통해 모든 창조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신근원의 의식과 불가분으로 연결된다. “Law of ONE, 우리 모두는 하나임의 법칙”은 홀로그램 템플렛 우주를 통해 질서로 나타난 의식과 에너지 법칙이다. 모든 생명들이 그에 따라 경험창조계로 나아오고 다시 근원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진화와 상승의 법칙이다.
간단한 홈페이지 하나를 만드는 데도 수많은 구성요소들과 법칙들이 적용된다. 하물며, 우리 인간의 인식차원으로 창조의 템플렛이 어떻게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지 상상하기란 상상조차 어려운 경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인식너머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런 것은 없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인간은 오랫동안, 영성종교와 물질과학의 이분법적 논리와 그것이 일으켜온 인식의 틀, 마음의 제약, 생각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우리 인간은 진정한 우주의 실재, 우리가 홀로그램 창조계안에 있음의 진실과 멀어져왔다. 신근원의 무한하고 영원한 지성, 우주와 온우주, 그 안의 모든 생명체들을 관장하는 우주의 질서, 법칙이 있음을 최소한 인정한다면, 근원의 무한지성이 템플렛을 통해 홀로그램 우주를 창조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상이거나, 말도 안되는 비과학적 상상이라 결론지을 수는 없다.
그러한 결론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우주의 형판 실상과 멀어지게 하고, 그럼으로서 그것과 불가분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 자신의 형판 실상과 멀어지게 할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 또한 이 홀로그램 템플렛 우주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생명의식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고, 인간이 되게 하고, 인간으로 존재하고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모든 인간의 구성요소들이, 바로 근원 의식과 연결된 신성한 청사진, 템플렛으로부터 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템플렛에는 오늘날 우리가 현실로, 세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본질적 구성요소들이 들어있다. 왜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는가..에 대한 근원적 설계적 차원의 의식과 에너지의 법칙, 구조, 모양이 들어있는 것이다. 보이는 세상의 모습이 이렇게 나타나고 보여지는 데는 그 배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식과 에너지차원의 원인, 이유들이 있다. 수많은 종교와 영성의 가르침들은 이 보이지 않는 배후의 원인, 근원적 작용에 대한 나름의 이해들을 인류가운데 전해왔다. 꺠달음의 언어들, 신화, 우화, 영성 문학, 고전들, 신들에 대한 깨달음, 그것을 체계화한 종교 교리들은 “나타나기 이전의 비가시적 실재들, 감추어진 질서들”에 접근하려는 노력들이다. 한편, 과학은 에너지-물질의 활동, 역학, 출처들을 연구하고 확인함으로 보이지 않는 배후의 활동들 보다는 “나타나고 있는 드러난 현상”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학은 나타난 현상에만 집중하고 그것만을 존재하는 실재로 인식할뿐, 그것을 일으키는 배후의 감추어진 질서, 고도의 의식지성, 의식이 일으키는 물질-에너지의 실상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립자들의 활동을 연구하는 양자역학은 이 감추어진 질서와 나타난 현상 사이의 배후작용, 의식과 에너지의 고도의 질서를 이해하기 시작한 첫걸음과 같다.
홀로그램 템플렛들은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다. 대우주 형판들과 소우주 형판들과의 상호관계, 물질이 형성되는 에너지 역학, 시간과 공간-물질의 차원 역학, 다차원 우주과학, DNA 활성화 과학과 세포 임프린트, 차원 상승 역학, 초미세입자와 입자/반입자 역학, 근원의식과 인류와의 관계 등에 관한 일련의 정보들을 상호연결된 유기적인 관계망 안에서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각각의 정보들은 서로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다. 우주 형판에 대한 이해는 곧 그것이 밑바탕으로 작용하는 인간의 형판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다. 인간의 형판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곧 우주의 형판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며 맞물려있다. 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곧 우주에 대한 이해이고 근원신에 대한 이해와 같다. 대우주의 형판 요소들은 단지 차원성-물질성에 맞추어 에너지 형태를 바꿀뿐, 배후엔 근원 의식장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의 수학적 기하학적 질서로 역동하는 형판은 모든 생명활동의 기저에서 물질 생명이 발현하는 질서와 규칙을 관장한다. 보이는 것들 뒤에는 그것을 현상으로 나타나게 하는 감추어진 질서, 즉 보이지 않는 의식-에너지의 형판 구조가 있는 것이다. 템플렛 지식을 통해 우리는 우주와 존재, 생명체들의 활동을 전방위적으로 유기적으로 통합적으로 포괄하는 통섭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어느 것도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어느것도 별개로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의 통합적 맥락, 유기적 법칙성을 통해 우리는 인간 존재의 유기적 통합성, 즉, 우주와 지구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 존재의 본래의 위상을 알게 된다. 인간의 영혼, 정신, 마음, 생각의 의식-물질들이 어떻게 육체의 에너지-물질들로 나타나는지를 알게 됨으로,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 생명관계의 실상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근원의 본래의 창조 의도, 목적을 의식과 에너지의 고도의 역학적 틀로 구성한 템플렛은 의식의 진화와 상승 법칙이 내재된 “신성한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신근원 의식장으로부터 개체화해 나온 의식 개체들은 “신성한 청사진”을 집합의식으로, 행성의식으로, 종족적으로, 개인적으로 따르며 진화한다. 우주의 모든 시스템, 존재, 사물들은 신성한 형판의 질서와 구조를 따라 경험창조계를 “통과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형판을 입고 인간경험을 하고 있는 영적 의식들이다.
육체는 특정 차원계에 집중하는 의식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의식이 입는 옷이다. 의식은 수많은 에너지-물질 옷들을 입는다. 우주적으로 고도로 진보한 의식 형판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의 에너지 몸체들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육체는 인간 경험을 가능케 하는 옷들 중, 가장 밖으로 드러나있는 원자 상태의 물질 형판이다. 육체를 떠나면(벗으면) 우리는 본래 내재되어 있는 다른 에너지 구성요소의 형판으로 갈아입는다. 죽어서도 자기를 인식하는 살아있는 경험들을 임사체험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육체를 떠나서, 그들은 충격적일 정도도 더 생생하게 확장된 감각과 더욱 큰 인식과 앎으로 세상을,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상태를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창조 형판은 곧 신근원에 대한 이해이다. 근원의 의도와 창조에 대한 이해이다. 그를 통해 나타나 진화하고 상승하는 우주의 모든 생명체에 관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영적-에너지 법칙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 존재의 의식-에너지적 본질, 현실의 본질, 우주와 지구, 인간의 관계성을 이해하는데 형판지식은 모든 존재가 타고나는 존재적 이해이다. 우리 존재 자체가 이 창조의 형판으로부터 나왔고, 그것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영적인 것은 우리 안에 있다는 진리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은 관념이나 믿음의 것이 아니다. 가시적이고 실재적이고 생생히 살아있는 영혼의 실체, 형판, 에너지 몸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 육체가 실체적인 원자, 세포, 신경구조등의 물질들과 그 물질들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되어 있듯, 인간의 영혼과 수많은 에너지 몸체들에는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들과 그 물질들이 일으키는 상호작용들이 있다. 즉, 모든 나타나 보이는 물질성 배후에는 그 물질을 일으키는 비가시적 물질의 가시적 실체와 상호작용이 있다.
우주의 대우주적 형판 질서는 지구의 행성 형판시스템과 연결되어 있고, 지구의 형판구조는 다시,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활동의 기본(Base) 형판이 된다. 다시말해, 의식에너지로서 우리가 지구를 선택할 때, 우리는 지구라는 어머니의 자궁, 지구 형판을 통해 연결되어 들어오고, 다시 지구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종족 형판을 입게 된다. “우주-지구-인간” 간의 형판차원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과 에너지적 연결에 따라 인간의 영혼, 정신과 마음, 육체의 활동은 불가분의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즉 의식의 인터페이스와 바이오(생체)-인터페이스가 형판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인간은 대우주의 기운이 축소된 소우주라는 말을 들어왔다. 우리는 이 말에서 어떤 진실을 느껴왔다. 그러나 이 진실을 뒷받침하는, 우주와 지구, 인간간의 불가분의 연결관계,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온전히 가진 적이 없다. 형판은 커녕, 그와 관련된 지식체계,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서로 다른 법칙으로 존재하며, 서로를 이해하거나 규명할 수 없다는 이원론적 인식관에 갇혀 있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오랜 싸움판은 우리의 생각을 이원론 너머로 확장하지 못하게 했다. 싸움판 안의 가치관들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모든 것을 규정했다. 창조신이란 것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그건 심판의 신이어서 맹목적으로 신앙해야 하며, 우주는 무작위로 생성된 알 수 없는 버블들, 에너지 다발들이고, 인간은 의미없이 태어나 의미없이 살다 죽게 되어 있다는 식의 가치관들이었다.
이원론의 싸움판에 갇혀 우리는 이 둘이 비롯된 본래의(Original) 온전한 통합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것들은 비과학적인 것들이고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미친 사상들이라 여긴다. 무엇보다 이러한 가치관들을 진정한 현실의 모습, 진리라고 수용하며 그 싸움판이 규정하는 인간다움의 틀을 마음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수용해왔다. 그런 생각들이 결과적으로 창조해온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원숭이 형판에서 나왔다는 “가치관-생각-물질”이 투사하는 “적자생존의 의식-에너지 수준”을 그대로 삶으로 발현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형판을 통해 나왔길래, 우린 고통과 비극, 죽음과 생존으로 얼룩진 삶을 경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신근원은 인간-형판을 통해 “원숭이들의 적자생존”을 경험하고 싶어한 것인가? 만약, 신근원의 인간-형판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다면, 본래 인간 형판-설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경험창조계를 경험하기로 선택하는 의식들에게 형판에 관한 지식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여기를 거치고 있는지,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한 자기에 대한 본질적 지식이며 이해이다. 항해의 나침반이자 여행지도이다. 자신의 성장과 진화, 상승을 이루어가는 청사진이다. 신근원은 그로부터 나온 모든 생명체들이 상식적인 지식으로 알아야 하는 이런 존재의 나침반을 숨겨 비전의 지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나를 잘 믿어야만 알려준다는 식의 특정 신을 섬기는 교리의 지식으로 왜곡하지 않는다.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관찰되고 측정할 수 있어야 “존재함”이라고 도장을 찍어주는 지상과학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만약, 원숭이 형판으로 적자생존-홀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이 인간종족의 고유한 의미와 목적이었다면, 적어도 인간은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원숭이 형판의 청사진을, 의식과 에너지의 본질적인 설계도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근원의 마음 안에서 모든 것을 홀로그램으로 경험하고 의식하는 생명체들의 권리이다. 신근원은 자신의 설계도, 형판과 관련된 모든 지식과 이해를 모든 존재들에게 알게 해야 하는 창조자로서의 의무를 갖고 있다. 그것은 창조자와 피조물간의 사랑의 약속이다. Law of ONE:우리 모두는 하나임의 법칙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약속이다.
의식과 에너지의 우주적 존재론적 법칙을 관장하는 창조의 형판안에서 영성과 과학은 하나가 된다. 형판(Template)은 영원하고 무한한 근원의 의식흐름이 어떻게 비물질, 물질에너지의 다양한 현실계를 창조하고 있는가에 대한 안내 지도이다. 경험창조계의 특정 현실을 자유의지로 선택해 하강하는 모든 존재들은 이런 형판지식을 당연히 알고 나온다. 이것은 나와 분리된 다른 세상의, 다른 우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의 본질과 존재의 본질에 관해 모든 생명체가 알아야 하는 타고난 생득권의 앎(Birthright Knowing)이다.
그러나 의식의 본질적인 두 속성, 영성과 에너지 물질 역학을,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다 못해, 싸움판이 전개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 해당 차원계가 신근원의 온전한 본래의 형판과 연결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신근원이 자신의 피조물이자, 자신의 경험계 형상들이 모두 타고난 생득권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정도 수준의 착각, 이 정도 수준의 인식의 왜곡, 한계에 갇혀있다는 것 자체가 지구의 형판에, 그것과 연결된 인간의 형판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은 이렇게 지구로 들어온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왜 지구 행성을 선택했는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연속적인 자신만의 항해 여정을 알지 못한채.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일어나는 자기에 대한 앎, 자기존재를 이해하려는 본능적 욕구는 지구 삶 속에서 완전히 부정당한다. 근원의식 에너지와 불가분으로 연결된 수많은 에너지 몸체들을 통해 자신의 정신과 마음, 육체, 세포, 원자들이 발현하고 있음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지 못한다.
지구에서의 대부분의 가르침, 학습내용안에 들어있는 “의도”는 한가지이다. 존재의 모든 것은 존재 “밖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당신 존재의 이유와 목적은 당신 외에, 다른 곳에, 외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존재의 이유, 목적을 찾아 자기 외의, 자기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신근원의 창조 “의도”는 존재의 모든 것을 존재 “안으로” “형판화” 했다. 이 형판 질서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지난 항해 여정에서 쌓아온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자기 에너지 몸체의 형판들에, 영혼의 정보로서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얼마나 선하고 악했는지와 상관없이, Law of ONE에 따라, 우리 형판에 내장된 나침반 바늘 끝, 여정의 최종도착지는 신근원에게로 다시 돌아가도록 설정되어 있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찾아 나서는 의식의 혼란은 에너지적 혼란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당연히 형판의 유기적 법칙에 따라 마음의 혼란을 일으킨다. 마음의 지속적인 혼돈은 존재 깊은 곳에서 고통을 일으킨다. 존재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다름아닌, 형판에서 일어나는 고통이다. 형판에 흐르는 빛들이 어두워지고, 입자들의 회전각도가 뒤틀리고, 에너지 나선이 인위적인 방향으로 묶여 갇혀도는 형판 차원의 고통이다. 우리가 영혼의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영혼의식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에너지 물질 형판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말한다.
이 모든 문제들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 생각, 육체의 왜곡과 질병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우리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나 이외의, 나 밖의 것들을 찾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럴수록 형판은 더욱 비틀리며 마음의 고통은 심화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내면의 질문은 인간 이전과 이후의 맥락을 잇지 못한채 깊은 무지에 빠진다. 영혼/의식은 신근원과 끊어진 고립된 물질 형판에 갇힌다. 영혼은 극심한 영적 고통에 몸부림친다. 다시 자신을 기억해 낼 수 있는 출구, 다시 자신의 항해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 즉 육체를 빠져나감으로 인간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 모든 얘기들이 소설이나 그저 상상이기를 나도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그러나 말이다.
그 어떤 혼란도, 고통도, 두려움도, 죽음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 본래 인간의 설계도, 청사진이었음을 당신이 알고 깨닫게 된다면..? 내가 타고난 본래의 형판 모습을 되찾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진정으로 위대한 인류의 영적 스승들은 이런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당신이 이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당신 안에는 신성한 형판(Template)이 있습니다.
신근원 의식의 빛기둥(Pillar)이 신성한 형판(Template)을 통해
당신 안에 빛, 소리, 진동, 입자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 신성한 형판이 당신의 영혼, 정신, 마음, 생각, 육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대우주의 Template(형판)들이 수많은 형판 빛Pillar(기둥)으로 연결되어
지금-여기에 잠시 정박한 존재의 사원(Temple)입니다.
신성한 의식과 에너지의 사원입니다.
이러한 당신 자신에 대한 이해..앎(Knowing)은
당신의 영혼, 마음, 생각, 육체의 사원을 가두고 있는
혼란과 고통, 두려움과 죽음으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 진리를 아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